車배터리로 미래 일구는 LG

지난해 12월 9일 미국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서쪽 미시간호를 향해 약 2시간 30분을 달리니 멀리서 ‘LG Chem(화학)’이란 글씨가 선명한 대형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LG화학이 북미 전기자동차 시장 공략을 위해 미시간주 홀랜드에서 2012년 가동을 시작한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인 ‘LG화학미시간법인(LGCMI)’이었다.

차량이 공장 입구에 다다르자 내비게이션에 ‘LG Way’에 진입했다는 안내가 나왔다. 길 이름이 ‘LG길’인 셈이다. 미국 정부의 강력한 친환경에너지 및 전기차 육성 전략 속에서 해외 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는 LG의 미국 내 위상과 역할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LGCMI 생산법인이 언론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본철 LGCMI 법인장은 “이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 부지는 50만 m²(약 15만1300평)에 달한다. LG는 2010년 기공식 후 2년 동안 약 3억 달러(약 3500억 원)를 투자했는데, 그중 절반을 미국 연방정부가 지원했다”며 “당시 미국 전기차 개발 지원 대상이 된 9개 기업 중 외국 기업은 LG화학이 유일했다”고 말했다.

LGCMI는 2012년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한 뒤 현재까지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북미 3대 완성차 업체를 모두 고객사로 확보한 상태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생산 업체 중 확실한 경쟁 우위를 선점했다는 의미다. 1992년부터 연구개발(R&D)에 시동을 건 LG그룹의 2차전지 사업이 구광모 ㈜LG 대표의 ‘고객 가치와 미래 성장을 위한 기술혁신주의’와 만나 LG의 실질적인 미래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28년 연구개발의 집약체 LGCMI

LG GM과 전기차 동맹

이날 찾은 LGCMI 생산 현장은 나흘 전 열렸던 미국 1위 자동차 업체 GM과 전기차 배터리셀 합작법인 설립 계약식의 여운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양 사는 1조 원씩 출자해 미국 오하이오주에 30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고성능 순수 전기차 기준 연간 약 5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이에 따라 GM은 ‘GM 전용 생산 공장’을 세워 확실한 공급처를 확보하고, LG화학은 미 전기차 시장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

이를 두고 LGCMI 임직원들은 “자동차 업계 전반에 큰 이정표 같은 의미를 지닌 행사”라고 입을 모았다. 구 법인장은 “상당수 세계 자동차 회사의 영문 이름에는 ‘∼모터스’가 들어간다. 이는 과거 자동차의 ‘심장’이 엔진이라는 뜻인데, 미래 전기차 시대에는 이 심장이 ‘배터리’가 됐다”며 “LG화학이 미국 1위 자동차 업체 GM와 함께 합작법인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위상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LGCMI 생산공장으로 들어가니 큰 소음과 함께 배터리 생산라인이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전극에 반응하는 활물질을 밀가루 반죽하듯 큰 통에서 버무려 구리, 알루미늄에 음·양극 활물질을 고르게 바르는 초반 작업부터 배터리 형태를 갖추는 조립, 배터리에 비로소 생명을 불어넣는 활성화 단계까지 전 과정 곳곳에는 LG만의 핵심 기술이 묻어 있었다.

LGCMI 관계자는 “지금까지 보유한 2차전지 특허 건수(지난해 3월 기준)가 1만7000여 건에 이른다”라며 “LGCMI 생산라인은 오랫동안 쌓아온 기술력의 결정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LGCMI는 늘어나는 북미 시장의 배터리 수요 및 수주 물량에 대응하기 위해 2018년 생산라인 1곳을 추가 증설했다. 이 생산라인은 분당 생산량을 이전의 2배 이상으로 끌어올린 초고속 라인이다. 최근 신규 직원 400여 명도 새로 채용하며 전체 직원 수가 1000명을 넘어섰다.

구 법인장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현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라며 “2020년 LGCMI의 매출 목표는 전년(약 3400억 원) 대비 2배 오른 7000억 원”이라고 말했다.

 

소재·부품에 미래 건 구광모의 뉴 LG

LG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의 핵심으로 꼽히는 전기차 배터리의 경쟁력은 단연 ‘기술력’이다. 2018년 취임한 구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기술 혁신을 강조하며 소재·부품 경쟁력 확보를 위한 R&D에 힘써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오고 있다. 실제 구 대표 취임 이후인 2018, 2019년 LG화학은 2년 연속 1조 원 이상을 R&D에 투자했다. 전체 매출의 약 4%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구 대표는 취임 후 첫 공식 행선지로 서울 강서구 LG사이언스파크를 택해 기술혁신주의를 이어갈 것을 선언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에는 대전에 위치한 LG화학 기술연구원을 찾아 “핵심 소재·부품의 경쟁력 확보가 LG의 미래 제품력을 강화하고,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내는 근간이다”라며 “진정으로 고객 가치를 혁신할 수 있는 도전적인 R&D 과제, 또 고객과 시장 트렌드 변화를 철저히 반영한 R&D 과제를 선정해서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 대표의 고객 중심 기술 혁신주의는 LG의 대표 계열사인 전자, 디스플레이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인사에서 각각 최고경영자(CEO)를 바꾸며 세대교체를 단행한 구 대표는 인공지능(AI),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바탕으로 도약을 주문하고 있다.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에서 LG전자가 전자업계 처음으로 고객 중심의 ‘AI 발전 4단계’를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소비자가 AI와 어떻게 소통해 나갈 수 있을지 처음으로 단계별 발전 방향성을 제시해 화제를 모았다.

재계 관계자는 “구 대표 취임 이후 2년 연속 LG그룹 임원 승진자의 60%가 AI, 로봇, 빅데이터 등 이공계 관련 인재일 정도로 고객과 기술 중심 경영으로 뉴 LG가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홀랜드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