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과 환경의 변화

2020년 9월, 유럽에서 전동화 차량의 판매대수가 드디어 디젤차를 넘게 되었다. 물론 이 전동화 차량에는 (electrified vehicle) 최근 많이 출시되는 48볼트 마일드 하이브리드 차량들이 포함되므로, 전동화 차량 비중이 꼭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정표의 달성은 우리가 연초에 예측하였던 것 처럼 전체적인 자동차 업계의 파워트레인 믹스가 빠르게 변해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2010년에
디젤은 50%, 전기차는 1% 였는데,

2020년 9월에는
전기차가 25%, 디젤은 24.8%가 되었다.

 

 

올 1월 5일 (그렇다, COVID-19가 시작되기 전이다. 아주 옛날처럼 느껴지는 때이다), 이 블로그에서는 2020년 이후의 유럽 자동차 CO2 배출 규제에 대하여 요약하며, 전동화 진행이 2020년, 2021년에 걸처 가속화 될 것을 이야기한 바 있었다.(아래 링크)

 

급변하는 2020년의 글로벌 자동차 업계 – 유럽의 이산화탄소 규제 강화와 피크 카 이후의 세계

 

2020년에는 가장 배출량이 높은 5%를 제외한 95% 판매차량 의 가중평균 CO2 배출량이 95g/km 이 되어야 하고 2021년 부터는 100% 가중평균이 95g/km 이 되어야 하는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이 때문에 구동 배터리를 모두 소모할 때 까지는 CO2 배출을 0g 으로 치는 유럽식 계산 방식에 따른 PHEV 판매의 급증은 예상되는 수순이었다.

1월 당시 포스팅에서 실물 경제와 자산 시장의 괴리가 2017년 부터 계속 심화되며, 자동차 업계의 어려움은 심해지고만 있는 현실도 언급한 바가 있었는데, 코로나 시대의 무한 유동성 공급에 따라 이러한 괴리는 더욱더 심해진 것이 또 현실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전통 제조사들은 비교적 금년 하반기에는 예상했던 것 보다빠르게 초기 락다운에 의한 손실을 극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테슬라의 급격한 볼륨 성장과 (보다는 볼륨 성장에 대한 기대) 함께 각 제조사의 예정된 전동화의 흐름이 더 빨라지기는 할 지언정, 그 트렌드가 느려지지는 않고 있다.

 

 

디젤게이트의 원조
폭스바겐의 전동화 로드맵

디젤에서 전동화 차량의 변화에 빼놓을 수 없는 제조사가 바로 폭스바겐이다. 2015년,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배출가스 테스트 사이클 조작으로 악명을 떨친 폭스바겐은 2017년, 로드맵 E (Roadmap E) 를 발표한 바 있다. 해당 로드맵에서 폭스바겐은 300종에 달하는 모든 차량의 포트폴리오에 전동화 차량 라인업을 모두 포함시킬 것을 계획하였고, 2025년까지 80종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배터리 전기차를 판매할 것을 밝혔다.

 

https://www.volkswagenag.com/en/news/stories/2018/04/roadmap-e-full-of-energy.html#

 

여기서 제시한 것 중 승용에 해당하는 모델로는 폭스바겐의 ID 전기차 컨셉, 포르쉐 미션 E, 아우디의 e-tron, 스코다의 비전 E 등이 있다. 이 중 대중차 브랜드인 폭스바겐에서 전용 전기 플랫폼 MEB 에 기반하여 이미 출시된 것이 컴팩트 (C세그먼트) 해치백인 ID.3 이고, 최근 발표된 것은 C 세그먼트 SUV 인 ID.4 이다. 이외에도 ID1-ID7 까지 다양한 모델들이 2023년까지 출시를 앞두고 있다.

 

MEB

 

이들 모델의 근간이 되는 MEB 플랫폼은 바닥 배치 배터리와 전/후 모터를 바탕에 둔 전기차 전용 차량모델용 플랫폼이다. 과거 모듈러 방식으로 승용, SUV 등을 효율적으로 생산하던 폭스바겐 전략의 전기차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폭스바겐은 기존 제조사들과는 비교적 색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내연 차 라인업 (폴로, 골프 등) 은 그대로 두고 순수 전용 전기차 모델을 ID 시리즈로 발매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전용 모델의 효율성과 패키징적 장점을 고유의 폼팩터를 통해 최대한 살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ID.3, 유럽 전기차 판매의
베스트셀러가 되다

전동화차 판매가 디젤을 넘어선 9월이 지나, 지난 10월, 유럽의 순수 전기차 중 폭스바겐 ID.3 은 가장 많이 팔린 차량이 되었다 (테슬라는 분기별로 몰아서 발표를 하므로, 모델 3이 리스트에 빠져 있는 것은 주의가 필요하다). 폭스바겐 골프의 전체 판매 대수 27,530 과 비교하였을 때, ID.3 이미 중요한 볼륨 모델로 자리잡았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2020년 1-9월 전세계 PHEV+BEV 판매 볼륨도 폭스바겐 그룹이 12.9% 로 테슬라를 열심히 따라가는 중이다.

 

 

ID.3 은 기존 유럽 제조사들의 파생형 저효율 전기차와는 달리, 바닥 배치 전용 플랫폼을 채택한 본격 신세대 전용모델에 속하며, 따라서 차량 중량이 가벼우며 (1,600kg) 효율도 좋다 (가용 45kWh 짜리가 WLTP 기준 330 km – 국내에 들어온다면 페리오닉과 비슷한 270 km 보다 약간 못한 정도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구동 방식은 RR로, 200마력/310Nm 의 토크는 현대 코나나 쉐보레 볼트 전기차를 떠오르게 한다. 전자 주행보조장비를 끄면 무척 재미있는 드리프트 주행이 가능할 것이다 (유투브를 보면 스포츠 모드는 없는 것 같다). 100km/h 발진 가속 (제로백) 은 7.3초이다. 오버행이 짧은 바닥배치 모델로, 주행 특성은 몰아 보지 않아도 예측이 될 정도이다. 폭스바겐 골프 가솔린 1.4 터보 모델의 느낌보다 전체적으로 더 바싹 땅에 달라붙고 민첩하면서 전동 파워트레인의 부드러움이 동반된 셋팅일 것이다.

아직 실물을 보지 못하였지만, 동영상과 브로슈어를 볼 때, 주력 볼륨 모델인 골프를 현 시점에 걸맞게 전동화하고 재해석한 완전히 새로운 차량이라는 생각이 든다.

 

폭스바겐 브로슈어에서

 

현대차가 아직까지는 코나를 주력으로 판매 중이며 2021년 초를 목표로 E-GMP 에 기반한 아이오닉 5 모델을 준비하고 있는 시점에서, 아이오닉 5와 가장 유사한 경쟁 상대라고 생각한다. 캡 포워드, 짧은 오버행, 바닥 배치, 해치백 형태가 모두 비슷하다. 매스 타겟의 준준형 전기차 전용 모델이 현 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형상과 패키징이다.

 

 

2021년 전기차 판도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테슬라 이외의 브랜드에서 300km 를 가는 전기차가 지난 2-3년간 꾸준히 출시 되고 있었지만, 여러가지 한계점들을 느낄 수 있었다. 갖출 것을 다 갖춘 모델들은 너무 비싸고, 크고, 무겁고, 비효율적이었고, 반대로 작은 차에 배터리만 크게 해 놓은 코나나 볼트 류는 본격적인 패밀리카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제도의 변화, 시장 환경의 변화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고, 결국 테슬라의 전용 플랫폼이 가지는 장점과 기존 업체가 가지는 대량생산의 효율성, 완성도를 융합한 차세대 전기 볼륨 모델들을 내 놓게 되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봇물처럼 터지는 시기가 2021년이 될 것이다.

지난 5년간은 테슬라가 전기차의 퍼스트 무버로서 공격자의 위치를 점하고 기존 업체들이 수비자의 위치를 점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2021년 부터는 어느정도 연산 규모가 정체되기 시작한 테슬라가 스스로의 위치를 지켜야 하게 되었고, 그동안 빠르게 캐치-업에 성공한 일부 거대 제조사들이 전용 모델을 바탕으로 역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감격한 박사
전기 모빌리티에 관한 사변(思辨)과 잡설(雜說)

 

현대 Prophecy의 사이드 스틱에 대한 단상

https://www.evpost.co.kr/wp/bmw-전동화-로드맵에서-느껴지는-전통-제조사의-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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