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불안정성과 낮은 용량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차세대 배터리로 꼽힌다. LG화학 제공

 

차세대 배터리 개발 경쟁 가속화

지난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받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주제로 만나 화제를 모았다. 전고체 배터리는 배터리 양극과 음극 간 이온을 전달하는 전해질을 액체 대신 고체 물질을 쓰는 배터리다. 재계 1, 2위 기업이 전기자동차부터 에너지저장장치(ESS) 같은 미래 산업을 이끌 핵심인 배터리 개발에 손을 잡은 신호탄 일 수 있어 업계의 이목이 쏠렸다.

실제로 국내 배터리 업계는 전고체 배터리를 유력한 차세대 기술로 꼽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기업들의 투자로 이달 중 시작하는 45억3000만 원 규모의 ‘리튬기반 차세대 이차전지 성능고도화 및 제조기술개발사업’에서 지원하는 관련 연구만 8개에 이른다.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투자에 나서 일명 ‘3사 과제’로 불리는 이번 사업이 전고체 배터리를 유력한 미래 기술로 지목한 것이다.

 

 

폭발 위험 적은 전고체 배터리

현재 전기차 등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2차전지인 리튬이온 배터리는 전해질이 액체다. 고온에서 반응을 일으켜 가스로 변해 폭발할 위험이 있다. 간혹 폭발과 화재 사고가 나기도 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이런 폭발 위험에서 자유롭고 환경 변화에도 강하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전지 여러 개를 직렬로 연결해야 에너지 밀도가 높아져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 반면 전고체 배터리는 전지 하나에 전극과 고체 전해질을 층층이 연결해 크기가 줄어든다. 이상민 한국전기연구원 차세대전지연구센터장은 “리튬이온 배터리에 들어가는 분리막 소재가 필요 없어 얇게 만들 수 있고 유연한 전지를 만드는 데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장점이 많은데도 리튬이온 배터리에 먼저 자리를 내줬다. 액체 전해질처럼 전도도가 높은 소재를 발견하지 못해 에너지를 많이 저장할 수 있지만 충분한 출력을 내지 못했다. 개념은 1980년대 처음 제시됐으나 한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일본 도요타가 2010년 황화물 전해질을 사용한 배터리 시제품을 공개한 뒤로 연구가 눈에 띄게 늘었다. 현재는 소재 후보군으로 황화물과 산화물, 고분자 3종이 발굴됐다.

현재 황화물 소재가 가장 앞서나간다. 전고체 배터리 연구에서 가장 앞선 일본이 주로 황화물 연구를 한다. 산화물은 세라믹 특유의 딱딱한 재질 때문에 배터리 내 음극과 양극에 붙이기 어렵다. 최근 연구가 시작된 고분자는 소재가 워낙 많아 유망하다는 평가를 받으나 전도도가 아직 황화물의 10분의 1 수준이다. 고온에서 다른 재료에 비해 약한 것도 단점이다. 반면 황화물은 전도도가 높은 편이고 물렁물렁해 공정에 적용하기도 쉽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 수준으로 전도도를 높이는 게 과제다. 이 센터장 팀은 최근 황화물의 특정 원소 농도를 극과 닿는 부분에서부터 점차 떨어지도록 조절해 이온이 빠르게 지나가는 소재를 개발했다. 일본의 황화물 소재와 동등한 수준의 이온전도도를 가지면서 유해가스는 덜 배출하는 특징이 있다. 김형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에너지소재연구단 책임연구원팀은 특정 원자 위치에 염소(Cl) 원자를 깔아 액체 전해질과 비슷한 수준의 이온전도도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3월 국제학술지 ‘나노 레터스’에 발표했다.

 

 

삼성, 전고체 배터리 수명 안정성 높여

전해질 소재가 개발되면서 소재와 맞붙은 양극과 음극을 고도화하며 상용화를 앞당길 기술들도 개발되고 있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은 3월 ‘석출형 리튬음극’을 적용해 전고체 배터리의 수명과 안정성을 동시에 높인 기술을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발표했다. 음극 두께를 얇게 만들어 에너지 밀도를 대폭 올린 기술이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기존 전기차의 2배 수준인 1회 충전에 800km를 주행하고 재충전도 1000회 이상 가능하다.

이 기술은 지금까지 나온 전고체 배터리 중 가장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센터장은 “가장 획기적인 결과로 전고체 배터리 플랫폼이 완성되어 간다는 의미”라며 “전고체 배터리가 시장에서 통할 수 있음을 메시지로 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고체 배터리를 비롯한 차세대 배터리 개발이 미래 시장을 개척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일본은 도요타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민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르면 2022년까지 전기차 배터리용으로 상용화에 나섰다. 일본은 관련 기술은 철저히 비밀에 부치면서 특허를 통해 기술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먼저 개발했는데도 한국에 지위를 뺏기며 전기차 시장을 내준 아픈 기억을 딛고 미래 시장을 차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센터장은 “기술을 확보하지 않으면 배터리도 소재·부품·장비처럼 일본에 끌려 다닐 수 있다”며 “양산되지 않은 산업 후보군이라도 미래를 생각해 선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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