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은 때때로 획일화된 모습을 보여줄 시기가 있었다. 기업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여 영업 이익을 창출하는데 분명한 목적이 있다. 많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제품과 성격이 있고, 이는 곧 트렌드와 상품 경쟁력으로 치환된다. 지지층이 탄탄한 기업이 아니라면 결국 수요의 흐름을 뒤따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시장의 획일화는 안전이나 환경 보전 등 법적 규제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특정 브랜드의 변화는 소비자들에게 저항 심리를 유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변하지 않아 무너진 기업의 사례가 더욱 흔하다.

폐쇄적인 성격의 기업이 무너지는 것,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 한다. 기업의 변화를 소비자에게 강요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내 경영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특정 지역에서는 수요가 있더라도, 세계 시장에서는 경쟁력을 상실해 버리기 때문이다. 근데 글로벌 시장에서도 개성을 유지하면서 꾸준한 명맥을 이어온 브랜드가 있다. ‘지프’다. 지프도 사실 소비자들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체로키나 컴패스 같은 차종들이 있지만, 브랜드를 상징하고 높은 판매고를 올리는 ‘랭글러’는 보수적인 패키징을 유지하고 있다.

2018년에 공개된 제4세대 랭글러 ‘JL’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브랜드들은 포기한 프레임 바디는 물론, 정비성과 기동성을 고려한 차체 설계가 인상적이다. 아이코닉한 디자인도 수십 년간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막연히 가격이 저렴한 제품이 아닌데도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다. 특정한 시장의 규모가 크진 않더라도 꾸준한 수요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법적 규제다. 더 이상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는 자동차는 시장에 내놓을 수 없다. 그래서 지프는 4세대 랭글러 4xe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이번 시승 차량은 지프 랭글러 4XE 2.0 PHEV Overland Power Top 트림이다. 트림 구성 자체는 기본 랭글러와 유사한데, 국내 시장에는 상위 등급인 오버랜드만 시판 중이다. 루비콘 대비 펜더, 사이드미러 도장이나 18인치 휠 장착 등 세팅이 달라진다. 파워탑은 소프트탑 재질의 루프가 전동식으로 개방되는 기능이다. 보통은 ‘캔버스 탑’이라고 표현한다. ACC나 AEB 등의 장치도 함께 추가되었다.

4세대 랭글러의 디자인은 더욱 개성적이고 대담하다. 지프의 헤리티지를 반영하는 7-슬롯 그릴과 원형의 헤드램프가 인상적이다. 7슬룻은 7개의 대륙을 상징하며, 동그란 LED 헤드램프는 교체가 유리한 형태에서 파생되었다. 두껍게 뻗어 나온 범퍼와 펜더는 플라스틱 소재로 지형지물에 쉽게 긁힐 수 있다는 특성을 고려했다. 차체를 보호하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이코닉 한 랭글러의 디자인은 개성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좋아 보이지만, 그 근간은 기능주의에 있다. 스타일이 아닌 기계장비의 본질에 초점을 두었던 것이다.

측면도 투박한 2박스 SUV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높은 경사를 보여주는 앞 유리와 거의 90도 각도의 D 필러가 인상적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라도 엔진과 트랜스퍼 케이스를 세로 배치하는 구조를 계승하기 때문에 축간거리가 상당히 길다. 바디온 프레임 형식인 만큼 지상고가 상당히 높고, 돌출형 펜더 덕분에 휠 하우스가 돋보인다. 경첩식 도어도 랭글러의 아이코닉함을 반영하는 요소다. 도어와 글래스, 루프 사이에 단차가 보이는데 분리형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18인치 휠 디자인은 의외로 세련되어 보인다.

뒷모습도 복잡한 느낌은 없다. 네모반듯한 테일램프와 스페어타이어 케이스가 랭글러의 캐릭터를 표현한다. 테일램프에 뚜렷한 LED 라인을 새겨서 상징성을 키웠다. 뒷유리 면적이 넓은 편이고 테일게이트는 옆으로 개방되는 형식이다. 4xe 전용 엠블럼이 부착되고, 이탈 각도를 키우기 위해 범퍼의 비중은 좁다. 견인 고리를 파란색으로 강조한 건 재미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네모반듯하고 단조로운 디자인은 스타일링은 둘째치고 주행 안정성이나 효율성에 있어 매우 불리하다. 그렇지만 오프로드 성능이 우선 사항인 랭글러에겐 최적화된 형태라고 볼 수 있겠다.

인테리어 디자인도 투박함이 있지만 크게 불편하진 않다. 대시보드는 작은 LCD를 포함하는 아날로그 계기판과 8.4인치 디스플레이로 구성된다. 정보 전달에 충실하고, 스마트폰과 유선 연결이 가능하다. 동그란 혼커버로 구성된 스티어링 휠은 나름의 세련미가 있다. 전자 장비가 최소화되는 만큼 버튼은 많지 않았다. 도어 탈착을 위해 파워 윈도 버튼이 센터패시아에 있는 점도 독특하다. 하이브리드 모드나 열선 시트, 스웨이 바 등을 제어할 수 있다. 그리고 변속레버도 두 종류다. 각각 변속기, 트랜스퍼 케이스의 기어비를 조절한다.

2열 공간도 특유의 박스스타일 차체 덕분에 개방감이 좋았다. 특히 파워 탑 모델의 루프를 열면 뒷좌석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이 인상적이다. 편의 장비는 USB 포트와 에어벤트 등 기본적이다. 원래 랭글러는 뒷좌석 시트를 펼치면 수납공간이 존재하는데, 4xe 모델은 대용량 배터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도 시트 포지션이나 기본적인 트렁크 용량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듯 하다. 랭글러의 실내 디자인은 관점에 따라 너무 보수적이고 불편한 구성일 수 있는데, 역시 차량의 특성을 고려하면 기능성이 훌륭한 것이고 아날로그 감성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겠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적용한 랭글러는 시동 사운드가 들리지 않는다. 정확히는 전원이다. 대략 32km를 오직 전기만으로 주행할 수 있다. 최고시속은 130km까지, 회생제동의 단계 조절이 가능하고, 당연히 전력 소모가 끝나면 일반적인 병렬식 하이브리드처럼 구동된다. 랭글러 4xe를 정확히 설명하면 PHEV와 MHEV 시스템이 전부 구현되어 있다. 45마력의 출력을 가진 소형 모터가 엔진 스타터 및 제너레이터의 역할을 수행한다. 메인 PHEV 모듈은 약 134마력의 최대출력과 25Kg.M의 토크를 발휘하는 모터와 17Kwh의 배터리 팩으로 구성되었다.

베이스는 2.0L 급 가솔린 싱글 터보 엔진으로 최대출력이 272HP, 토크가 40.8Kg.m다. 변속기는 ZF의 8단 토크컨버터가 배치된다. 내연기관만으로도 출력은 충분히 커버할 수 있어 보이는데, 합산 출력은 375마력, 65토크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다만, 4xe는 공차중량이 300kg가량 상승하므로 어느 정도 합리적인 세팅이라고 볼 수 있겠다. 가장 중요한 연비는 12.7km/l로 도심형 SUV와 비슷한 수준이다. 8km/l 초반대에 머무는 일반 랭글러에 대비해서는 50%가량 상승한 수치라는 게 중요하다.

모터로 출발하는 발진 감각은 조용하고 부드럽다. 왠지 시끄러운 사운드와 떨림이 느껴져야 할 것 같은 인상과는 대비된다. 회생제동이 개입하면서 정차하면 묵직한 차체에도 자연스러운 감속이 가능하다. 적응은 조금 필요할 것 같았다. 휠 트래블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서스펜션 스트로크가 길지만, 댐퍼나 스프링은 생각보다 하드한 세팅이었다. 때문에 도심 주행에서는 도로 노면을 선명히 읽혀주는 감각이다. 롤링과 피칭도 심하지 않고, 물렁이는 승차감을 위해 긴 스트로크를 세팅했던 과거 대중형 SUV의 느낌과는 확실히 다르다.

리서큘레이팅 볼 방식을 채택한 스티어링 휠은 묵직한 감도를 갖추고 있다. 반응 자체도 즉답적이진 않고 살짝 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랭글러의 출력은 넉넉하다는 기록을 했는데 가속감이 막 폭발적인 느낌은 아니다. 전기모터와의 협력에 다소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변속기도 재빠른 감속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프레임 바디의 높은 무게중심과 중량은 체감 가속을 더욱 둔하게 만든다. 확실히 편안한 온 로드 주행을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인 방음이나 고속주행 시 풍절음도 피해 갈 수 없었다.

분명한 건 주행 안정성에 대한 개선이 있었을 것이다. 전자식 스태빌라이저를 통해 롤 강성을 확보하고, 단단한 섀시 세팅도 인상적이었으며 AWD도 지원한다. 정확히는 온 디멘드 4H AUTO라고 표현할 수 있다. 평시에는 후륜 축을 구동시키지만, 전륜에서 슬립이 감지되면 전륜 차축을 연결시켜 토크를 배분하는 방식이다. 온 로드 주행에 대한 N.V.H가 일반적인 승용차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지만, 튼튼한 차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곧바로 불안함으로 연결되지 않는 법이다. 지상고가 높아서 다른 차량들의 천장을 내려다보면 심리적 안정감도 더해진다.

랭글러의 진가는 비포장도로에서 나타난다. 노면 울퉁불퉁하고 자갈길 등 접지력이 불안정한 순간에서도 담담하게 차체를 이끌어 나간다. 원한다면 스웨이 바를 분리할 수도 있다. 스태빌라이저가 온 로드에서는 안정성을 보강하지만, 오프로드에서는 휠 트래블에 제약을 건다. 앞서 언급한 리서큘레이팅 볼 방식의 조향 감각은 역시 묵직한 조향감으로 조타성을 확보한다. 실제 내구성에도 유리한 방식이다. 여담으로 이번 4세대 랭글러는 바디와 프레임에서 약 90kg의 무게를 덜어냈는데, 고장력 강판을 대거 투입하면서 차체 강성은 늘어났다.

트랜스퍼 케이스는 당연히 센터락을 잠그거나 해제할 수 있다. 후륜 고정 2H는 크게 쓸 일이 없을 듯하며, 구동 축을 연결하는 ‘4H’, 그리고 저속 기어 ‘4L’도 마련되어 있다. 기본적인 4H AUTO로 웬만한 험로는 충분히 주파할 수 있을 듯하다. 추가로, 접근 각도는 43.8도 돌파각 22.5도 이탈 각도는 35.6도이며 76Cm까지 도강 능력을 보장한다. 오프로드에 빠져들어 잊고 있던 사실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이라는 것이다. 내리막길에서는 회생제동을 활용하여 에너지를 얻고, 높은 오르막길에서는 모터의 토크로 과감한 주행과 차체 밀림을 억제해 준다.

대용량 배터리가 탑재되었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불안감이 생길 수 있다. 배터리가 충격에 민감한 부품인 건 맞다. 랭글러 4XE는 대용량 배터리를 단단한 철판으로 보호하고 있고, 방수 대책에도 각별히 신경 썼다고 한다. 정통 SUV의 디자인과 아날로그 한 인테리어를 갖춘 랭글러가 전기모터로 굴러간다는 점이 특히나 이질적인 감각이긴 했다. 32Km라는 항속거리가 넉넉하진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웬만한 출퇴근 거리는 커버가 가능한 수치라고 본다. 전비가 좋은 수준은 아니더라도 충전료가 크게 오르지 않는 한 메리트가 있을 수 있다.

지프 랭글러 4XE 파워탑을 시승했다. 온 로드와 오프로드, 그리고 하이브리드 시스템까지 평가해 볼 항목이 많은 차종이었고 그만큼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모델이기도 했다. 가장 완성도가 높은 분야는 당연히 오프로드였다. 그 어떤 온 로드 세팅의 자동차나 하이브리드 기관의 친환경 자동차도, 랭글러의 기동성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다. 대신 그만큼 랭글러 4XE도 도심형 SUV나 HEV의 완벽한 대체재가 되어주진 못한다. 순수 내연기관 랭글러나 여타 바디 온 프레임 SUV의 대체재로 적임 된 차종이다.

어디까지나 친환경을 지향한 ‘랭글러’다. 사회의 압박이 없었다면, 굳이 직결감과 정비성을 중시 여기는 랭글러에게 HEV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았을 것 같다. 반면, 설득력도 있긴 했다. MHEV와 PHEV를 조합한 시스템은 출력이나 승차감에서 베이스 모델 대비 이점이 상당하다. 특히 평상시 주행거리가 긴 편인데, 랭글러의 낮은 연비가 부담이었던 소비자에게 최적의 선택지일 수 있다. 정통 오프로더는 자연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지프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에 다가서고 있으며 소비자들의 권리도 끝까지 보장할 것이다.

 

 

유현태
자동차 공학과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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