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6GT 계약취소와
쇼티지 버블 종언의 예감

2021년 초 사전예약을 오픈하자마자 계약을 걸어두었던 EV6GT가 생산에 들어간다는 연락을 받았던 것이 얼마 전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이 차량의 계약을 취소하고 말았다. 왜일까? 한편, 2023년에는 자동차 쇼티지 버블이 우리나라에서도 해소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이야기를 해 본다.

 

 

8000만원짜리 전기차의
미래 가치와 현재 비용

EV6GT 풀옵션을 등록비용과 공채 할인, 첫해 보험료까지 모두 납부하고 인도받기 위해서는 얼추 8천만원이 들어간다. 인플레이션 속도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알기 어려우니, 8천만원짜리 전기차의 신차가격이 얼마나 더 가파르게 오를지는 역시 알기 어렵다. 니켈 등 여타 산업금속 가격은 지난 1년새 많이 내렸지만, 배터리의 주요 소재인 리튬 가격은 2년간 거의 10배가 올랐다.

1년 전 예상한 것 처럼 2022년은 블룸버그 BNEF 지난 12년간 최초로 세계 전기차 배터리 가격의 상승을 선언한 해이다 (EV Transition Threatened as Battery Prices Rise for First Time). 그러니 나로서는 지금이라도 이 차를 잡아둬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이 가장 쌀 때라는 심리다.

 

출처 : EV Transition Threatened as Battery Prices Rise for First Time Cost of metals expected to keep prices high until 2024. www.bloomberg.com

 

기회비용이 크게 달라졌다

한편, 8천만원의 기회비용이 크게 달라졌다. 시가배당률 6%가 넘어가는 우량기업의 주식들이 증권시장에 넘쳐나고, 정기예금마저도 5% 이상의 이자를 주는 시대가 되었다. 8천만원의 현금 유동성은 예상하기 어려운 2023년의 금융시장을 뚫고 항해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요긴한 구석이 있을 것 같다. 반대로 이 차량을 빚(debt)의 형태로 구입한다면? 끔찍한 역 현금흐름이 상당기간 발생한다. 자산 시장의 겨울이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카푸어가 되는 것이다.

 

 

8%의 이율/기대수익률로 8천만원 원금에 향후 5년간의 복리 이자를 더하면 1억 883만원이 된다. 통상적 기업의 내연차 상각 기준에 따르면 (5년) 연 2200만원이 공중에 타버리는 셈이다. 8천만원의 빚을 일으켜 차량을 사거나, 8천만원을 적절한 자산배분 포트폴리오에 넣지 못하는 댓가가 생각보다 크다. 재작년이나 작년 초에 테슬라를 샀던 사람들 처럼, 차테크를 할 수 있으면 오히려 수익을 볼 수 있는것이 아니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왜일까?

 

 

2. 오를 것을 기대하는 장과
내릴 것을 기대하는 장

‘집은 오늘이 제일 싸다’라는 논리로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공포를 불러일으키던 것이 불과 1년 반 전이다. 직주 근접성이 좋은 서울 요충지에 아파트가 현저히 부족한 것 때문에 많은 직장인들이 불필요한 고통을 겪는 것은 사실이고, 지금도 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어딘가 멀고 먼 허허벌판에 지어진 아파트가 분양가 대비 5배, 6배 오른 상태로 손을 끊임없이 바꿀 수 있는 버블을 지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세와 분위기에 휩쓸린 사람들은 탐욕과 분노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투기적이었던 수도권 아파트 시장에 이러한 역동이 존재하다가, 결국 금융 비용을 감당할 새로운 구매자가 씨가 마르니 대세 하락이 이어지게 된다.

 

 

반도체 쇼티지와 과잉 유동성으로 신차에는 프리미엄이 붙고 중고차 시장에는 버블이 생기던 2021년을 뒤로 하고, 미국의 중고차 시세는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하는 것 처럼 보인다. 아래 그림처럼, 마치 펌핑된 가상화폐처럼 치솟아 오르던 중고차 가격 지수는 올 하반기부터 빠른 속도로 하락하는 추세를 만들고 있다.

 

 

미국 중고차 가격
버블이 터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는 높은 가격 그 자체라는 이야기가 있다. 폰지적 재화나 일부 위치재를 제외한 대부분의 재화에서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은 수요의 감소를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된다.

신차 공급 쇼티지와 상대적으로 견조한 수요를 바탕으로 테슬라를 비롯한 제조사들은 차량 가격을 횟집의 ‘싯가’처럼 마음껏 올릴 수 있었다. 차량 가격이 내년에 또 20% 오를 것인데, 할부금융의 이자는 고작 5%라고 하면, 지금이라도 빨리 계약을 해야겠다는 심리가 팽배하게 된다. 지금 사서 타다가 나중에 팔아도 무조건 이익이라는 심리는 전기차가 출시될 때 마다 계약 열풍을 만든다. 부동산 호황기의 모델하우스를 생각하면 된다.

 

 

편안안 마음을 가지고 가격을 한껏 올릴 수 있었던 아이오닉 6이나 신형 그랜저가 제조사의 예상보다 떨어지는 출고 댓수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18개월, 12개월 기다려야 한다는 차량들이 갑자기 다음주에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경기나 금리 사정이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과연 이 차량이 지금 꼭 필요한가’ 한번 더 고민을 해 보게 된다.

그렇게 분위기가 꺾이면, 어느순간 새 차 구하는 일이 무척 쉬워져 버릴 수 있다. 당연히 중고차 가격도 빠진다. 중고차 가격이 빠지면, 값싼 중고차가 가진 가격의 강점은 신차의 경쟁 요인이 된다. 이렇게 우수수 신차 계약 버블과 중고차 버블은 한방에 터질 수 있다.

 

 

배터리를 한껏 담은 거함거포형 전기차를 연이어 출시하며 마음껏 가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던 제조사들은 벙 찌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손해를 보며 폭풍 할인을 하지 않으면 구매자를 찾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2022년 대한민국의 기준 중위소득은 2인 가족 기준 월 326만원이다. 월 기회비용이 100만원이 넘어가는 고가의 전기차를 단순히 사용가치만 놓고 선뜻 구매할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효율을 높이고, 배터리는 줄이고, 실내 공간은 알뜰하게 뽑아내서 보통 사람들이 생활에서 즐길 수 있는 전기차의 개발은 도외시하고 뭐든지 더 크고 화려하게 만들기만 했던 제조사들은 결국 지금의 버블이 해소되면 큰 과보를 치르게 된다.

 

 

3. 언제 어떻게 사야 하나

안타깝게도 구형 아이오닉과 코나는 수출로 국내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어버렸다. 지금 나오는 대용량 배터리의 고가 전기차들은 환경적 이익과 경제적 이익이 모두 의심스럽다. 국내의 그리드는 여전히 kWh당 500g의 CO2를 배출한다. 실주행 전비 4-5km/kWh를 겨우 보이는 고중량 전기차들은 중형 하이브리드 자동차보다 생산, 소비, 폐기 전반에서 열등한 탄소 발자국을 보이는 셈이다. 그런데도 동급 하이브리드 내연차에 비해 구매비용이 2천만원 이상 비싸다. 불과 5-6년만에 엔트리 레벨 전기차의 실구매가가 2.5배가 된 상황이다.

 

 

무슨 차를 사든 지금의 버블 압력이 빠진 다음에 사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전기차는 더더욱 그렇다. 사치재로서의 목적이 아닌, 사용 가치로 보았을 때에 지금의 배터리 전기차는 거품이 너무 심하다. 집 처럼, 꼭 필요한 실사용자(?)라면 살 수야 있지만, 집과 달리 차량은 대체재가 많고, 지금 사용해야 하는 그것이 꼭 배터리 전기차여야만 하는지는 의문이다.

감격한 박사
전기 모빌리티에 관한 사변(思辨)과 잡설(雜說)

 

어떻게 우리는 테슬라를 타며 미래를 꿈꾸게 됐나? – 슈퍼카의 오마주를 입다

이전 글포르쉐 전기차 타이칸과 함께한 일상
다음 글포르쉐 전기차 타이칸과 함께한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