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레이EV를 시승했다. 최근 전기차 시장의 조짐이 성장세가 꺾인지 오래다. 지난해 연말,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음에도 판매량에 극적인 반등이 없었다. 2024년 전기차 보조금 개혁이후 전반적으로 소폭 지원금액이 감소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브랜드들은 가격 정책을 수정하지만, 지금은 자동차 시장 자체가 위축된 분위기다. 즉, 전기차는 합리적인 ‘가격’ 만으로 소비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 레이EV 는 그런 얼어붙은 시장 상황 속에서도 비교적 많은 수요를 누리고 있었다. 직접 시승을 통해 레이 EV의 이점을 분석해 보고자 했다.

간단히 레이EV의 연혁을 살펴보겠다. 레이는 공간 활용성을 극대화한 원-박스 카를 지향하던 국내 최초의 경형 자동차로 2011년에 데뷔 한 바 있다. 실은 레이 전기차도 출시 초기에 1.0 가솔린 엔진과 함께 시판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보다 보조금 비율이 높지만 가격이 비싸고, 충전시간과 항속거리의 제약이 크다는 점에 자연스레 시장에서 소외된다. 결과는 단종, 2022년에는 2차례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더뉴 레이가 출시된 바 있다. 이 때 레이 EV도 시장에 복귀한다. 그간 발전된 전기자동차 기술력을 기반으로 항속거리는 2배 가까이 연장했고, 가격은 대폭 절감하는 합리성을 겸비한다.

레이는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박스타입 경차다. 즉, 레이EV의 경쟁자는 사실상 1.0 가솔린 레이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레이는 큰 차가 부담되는 소비자들도 드넓은 공간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고, 경제적인 자동차를 찾는 서민들에게도 가격대비 최고의 효용을 제시해 주었다. 특히 비용을 절감하며 운송업무를 해야했던 개인사업자들에게는 안전 문제로 단산된 ‘다마스’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에 가까웠을 것이다. 기아는 그런 환경을 반영하여 ‘1인용 밴’을 라인업에 추가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레이EV 시승을 통해 확인한 바 와 같이 실내 공간은 동급 최고 수준이다. 실제 활용 범위는 한 체급 위의 SUV보다도 훨씬 낫다고 본다. 전고가 높고 개방감이 뛰어나며, 트림에 따라 1열 풀 플랫 시트가 포함되니 차에서 잠을 자는 ‘차박’ 여행에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뒷좌석만을 확인해도 웬만한 준중형 SUV보다 레그룸이 넓다. 휠베이스를 최대한 연장하고, 서스펜션 구조를 낮추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트렁크 공간이 좁아지긴 하나, 앞서 언급한 풀플랫 시트가 이를 보완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하지만 크기 제한 규정, 아울러 배기량 규제까지 존재하는 ‘경차’라는 특성의 한계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편의장비, 출력, 디자인 등 많은 단점이 존재할 수 있다. 기아는 두 차례의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많은 단점을 보완했다. 첫째로 디자인의 변화가 상당히 마음에 든다. EV9을 통해 선보였던 세로 형태의 패밀리 룩을 적용하여, 훨씬 듬직하고 다부진 인상을 연출하게 되었다. RV 라인업에서 인기를 끄는 기아의 메인 포트폴리오에 편입된 느낌이 들기도 하며, 크기도 작은데 귀여운 인상을 보여주던 기존 레이의 가벼운 느낌을 완전히 덜어내기에 이른다.

편의장비는 단가가 있으니 크게 나무랄 수가 없는 부분이다. 아무렴 이번 시승 차량은 레이EV 중에서도 상위트림인 ‘에어’라 그런지 부족함을 느끼기 어려웠다. 전동시트 같은 전장 장비가 채택되지 않을 뿐, 시트 높이 조절도 가능하고 1열 인조 가죽 시트와 스티어링 휠에는 열선이 내장되고, 운전석에는 통풍시트까지 적용되기도 한다. 차로 유지 보조와 하이빔 어시스트 등 편안한 운전을 돕는 ADAS장비도 마련되어 있다. 드라이브 와이즈 패키지를 추가하면 후측방 경보가 추가되고, 컴포트 패키지를 추가하여 2열 편의성을 강화할 수도 있다.

이제 레이가 ‘경차’라서 지닌 단점 한 가지가 남았다. 배기량 규제, 그리고 단가 상승을 고려한 낮은 출력의 엔진과 4단 변속기이다. 솔직히 최악이라 느낀다. 하지만 대안이 없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사용되는 부분은 이해할 수 있다. 엔진 출력 대략 76마력의 최고출력과 10Kg.m에 약간 못 미치는 최대토크를 지녔다. 바로 윗급 준중형 세단과 비교해도 전체적인 출력인 50% 가량 감소한 수치다. 반면 공차중량은 많이 쳐줘야 30% 차이가 발생하니 가속감에서 불편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럼에도 많은 수요가 있는 만큼 개인차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다.

합리적인 비용만큼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많은 짐을 적재하거나 모든 사람이 탑승하면, 엔진은 RPM을 올려 쓰게 된다. 기어비가 다양하면 조금 더 대응할 수 있는 RPM 폭이 넓어지겠지만 다단 변속기를 쓰기엔 비용 문제가 있다. RPM을 높게 쓴다는 건 그만큼 연비가 저하된다는 의미이고 소음과 진동이 크게 유입된다. 실제 레이 1.0 가솔린의 공인연비는 12.7km/l다. 배기량도 높고 무게도 무거운 아반떼가 14.8 km/l의 공인연비로 실연비는 더 높게 나오는 편이다. 가장 큰 원인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출력과 변속기의 부조화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펀치력도 부족하니 오르막길이나 차량 추월 시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이번 글의 본론은 레이EV 였다. 앞서 서술한 내용들은 레이 EV의 장점을 대비시키기 위함이었다. 레이EV는 전기자동차의 구동계를 이식함으로써 모든 단점을 해결했다. 그야말로 ‘혁신’이라 느꼈다. 저배기량 엔진이 지니고 있던 심각한 엔진 소음과 떨림, 그리고 변속기의 부조화, 그로 인한 연비 저하와 가속성능 부진까지 모든 단점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단적인 비교로 레이 EV의 제로백은 약 11초, 1.0 가솔린 레이의 제로백은 17초라고 한다. 물론 공식 발표된 수치는 아니라 중량과 도로 환경에 따라 가속 성능은 더 차이 날 수 있다.

모터도 미세한 소음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거의 인지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반대로 소리를 내기 위해 사운드 제너레이터를 활용하는 수준이다. 변속기는 없다. 엔진 회전수에 따라 토크와 효율이 다르게 발생하는 내연기관과 다르게, 전기 모터는 바로 최대 토크를 출력할 수 있다. 레이EV의 단순 환산 최고 출력은 86마력, 최대 토크는 15kg.m이라 한다. 실제 최고 시속 60km 이하 도심에서 체감하는 가속성능은 그 이상이다. 또 4단 변속기는 이따금 변속 충격으로 불쾌함을 주기도 하는데, 전기차는 엑셀링을 어떻게 하든 이외의 충격은 없다.

혁신이다. 기존에 알고있던 레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승차감이 정숙하고 부드러워졌다. 전기차니까 당연한 묘사일 수 있는데, 오히려 그래서 정말 ‘혁신’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원래 전기자동차는 테슬라의 ‘프리미엄’ 전략으로 인해 값비싼 대형 세단이나 SUV를 위주로 발전되어 왔다. 생산원가가 높아지니 마진율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기존 고급 세단이나 SUV들은 이미 완성형에 가까운 내연기관 엔진과 변속기를 탑재하여 전기차가 지니는 승차감에서의 이점이 조금은 희석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경차에서는 극단적인 차이를 보였다. 체급을 뛰어넘는 정숙함, 펀치력, 아울러 ‘공회전’이란 개념 자체가 사라지고 회생제동까지 가능한 전기차는 무게가 가벼운 만큼 전비도 늘어난다. 앞서 레이 가솔린은 아반떼에 비해 연비가 현저히 떨어졌지만, 전기차에서는 무게가 가벼운 차종이 전적으로 우위에 있다. 물론 휠 인치나 공기저항 등 주행에 의한 저항은 별개의 개념이지만, 레이EV의 공차중량은 약 1.3톤, 35.2Khw급 LFP 배터리를 탑재하여 205KM의 항속거리를 달성했다. 도심 주행에서는 온종일 타도 무리가 없는 제원이다. 물론 장거리 주행은 어렵다.

시승 차량인 레이 EV 에어 트립의 정식 출시가는 2955만 원이다. 스타일 패키지와 2열 컴포트 패키지 등이 빠짐으로써 더욱 합리적인 견적이 나왔다. 항속거리가 짧아서 국고 보조금은 다소 낮게 책정된다. 대신 2024년에 신설되었던 전기차 성능및 환경성 계수에 대해, 전기차는 면제를 받는다. 그래서 국고보조금과 지자체 보조금을 합산할경우 실구매가는 대략 2000만원 초반에서 중반까지 형성된다고 한다. 인구수가 매우적은 일부 지방에서는 천만원 후반대로 구매가 가능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레이 1.0 가솔린과 비교해보면 출고가는 300만원에서 400만원 가량 차이가 난다고 한다.

솔직히 수 백만원의 웃돈을 주더라도 레이EV를 택할 것 같다. 기존 가솔린 레이와의 승차감을 비교해보면 성능 차이는 너무나 큰 폭이다. 어차피 자주 이용하는 자동차라면, 가솔린 레이의 답답함을 보완해 준다면 수백 만원 그 이상의 효용가치가 있다고 본다. 하나, ‘장점’만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항속거리가 짧은 편이고 그에따라 충전 횟수가 늘어난다. 고속 충전시 10%에서 80% 충전시간은 약 40분이 소요된다. 그런 경우가 흔치는 않겠지만 1일 200KM 이상의 주행이 잦다면 큰 불편함이 수반될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충전 자체가 번거로운 건 사실이다. 일정한 루틴이 정해져있지 않다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레이EV의 단점을 넘어서 ‘전기차’를 소유할 만한 환경이 성립하는가를 따져보면 좋겠다. 보편적인 예시로 집이나 직장 근처에 충전소가 확보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LFP 배터리의 특성상 겨울철 성능 저하가 더욱 심한 편이고, 저온 항속거리는 167KM라고 한다. 시승 결과 대략 20%의 저하는 확실히 있습니다. 그리고, 엔진이 없어 히터 성능이 뒤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기아 레이 EV를 시승했다. 그야말로 ‘서민을 위한 혁신’이라는 총평을 남기고 싶다. 단, 충전 인프라가 확보되었다는 조건 내에서, 경차가 갖고 있던 주행질감의 많은 단점을 상쇄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자면 충전의 번거로움 말고도 바닥면이 다소 높아진다는 단점도 있긴 하다. 실사용 후기를 남기자면 크게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낮은 지상고와 토션빔 서스펜션으로 인한 노면 충격은 여전히 올라온다. 아무렴 경차다. 그런 전제조건 하에, 레이 EV만큼의 승차감과 활용성을 품은 경형 자동차는 전례가 없었다.

 

 

유현태
자동차 공학과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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