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와 BYD는 왜 배터리를 직접 만들까?

[요약]
1. 이제껏 전기차 시장은 정부 보조금과 규제에 의해 성장해 온 ‘공급자 중심 시장’이었습니다.
2. 하지만 이제 정부 보조금 및 규제가 축소되며, 자체적인 상품성 개선으로 소비자 선택을 이끌어 내야 하는 ‘수요자 중심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3. 얼리어답터용 제품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높은 가격’이란 숙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4. 그리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높은 원가로 발목을 잡고 있는 배터리 원가를 낮추어야 합니다.
5. 실제로 글로벌 선도사라 할 수 있는 테슬라와 BYD는 일찍부터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해왔고, 덕분에 몇 안되는 전기차 시장의 흑자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6.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를 내재화할 시, 누릴 수 있는 이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7. 첫째로, 배터리 제조사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습니다.
8. 둘째로, 셀 투 바디, 셀 투 샤시 기술과 같이 완성차 업체만이 창출할 수 있는 시너지가 존재합니다.

전기차, 이제는 각자도생의 시대다

이제껏 전기차 시장의 성장을 이끌어 온 것은 ‘공급자’였습니다.
‘탄소 배출 감축’이란 기치 하에, 각국 정부는 전기차로의 전환을 위해 완성차 업체들에게 규제를 부과하며 전기차 생산을 강제해왔습니다. 또 높은 가격 허들을 낮추기 위해 대당 수 백, 수 천 만원의 높은 판매 보조금을 적극 살포해왔는데요. 이로 인해 기존 완성차 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돈 안되는 전기차 판매를 늘려왔고, 테슬라나 BYD 같은 신흥 전기차 메이커들 역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전기차 침투율이 전체 자동차 시장의 15%를 넘어서면서, 상황이 180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는 전기차 시장이 성장 궤도에 안착했다는 판단 하에 보조금을 축소 또는 폐지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시작된 미국 IRA 보조금조차도, 트럼프가 정권을 잡을 경우 폐지될 수 있다는 리스크에 위협받고 있죠. 또한 완성차 업체들의 볼멘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자, 영국, 독일 등의 국가에서는 전기차 전환 목표 시점 또한 늦추려는 움직임까지 포착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급자의 강력했던 견인력이 힘을 잃으면서, 전기차 시장은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규제나 보조금과 관계없이, 오로지 제품 자체 상품성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을 받게 됐는데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구매하는 대부분의 제품과 마찬가지로, 상품성이 떨어진다면 덜 팔리고, 상품성이 높다면 더 많이 팔리는 겁니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수요 둔화기라면 소비자의 선택은 더욱 냉정해집니다. 상품성을 확보하지 못한 브랜드는 철저하게 외면 받을 것이고,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겠죠. 정부 지원 없이 수많은 제조사들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린 겁니다.

전기차 시장 반등의 전제조건 = ‘배터리 가격 하락’

그렇다면, 전기차는 어떻게 내연기관차 대비 높은 상품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충전기 보급 확대, 주행 성능 개선, 화재 안전성 확보 등 많은 과제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시급한 것은 ‘가격’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충전기가 늘어난들, 주행거리가 늘어난들, 가격이 높으면 구매 자체가 불가능하고, 이에 따라 소비자 풀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전기차는 아직도 많이 비싼데요.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는 동급 성능 내연기관차 대비 500~1,000만원 내외는 더 비싸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가격이 높은 이유는 아직 원가가 너무 비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뻔한 이야기지만, 원가가 높은 가장 큰 이유는 배터리 가격이 아직 비싸기 때문이고요.

결국, 비싼 배터리 가격이란 고질적 문제가 전기차 시장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아직도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배터리 가격이 $100/kWh까지 내려가야 이론상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원가가 동등한 수준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2010년대부터 급격하게 하락해온 리튬이온 배터리의 가격은 2020년 이후 하락세가 완만해지며 정체된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2022년에는 가격이 오히려 전년 대비 상승하기까지 했고요. 2023년 기준 $139/kWh를 기록했으니, 목표인 $100/kWh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하락 곡선이 완만해진 배터리 가격 (사진 출처: BloombergNEF)

내재화해야 앞서 나간다

이런 꼴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될까요? 배터리 업체들이 알아서 노력해서 원가를 절감해줄 때까지 손놓고 기다리고 있어야만 할까요? 혹은 배터리 업체들에게 원가를 낮추라고 열심히 채찍질을 하면 해결될 문제일까요?
결국 완성차 업체가 직접 나서야만 합니다. 전기차 제조사들의 매출과 이익, 나아가 생존 가능성과 직결되는 문제인만큼, 두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직접 배터리를 연구 개발하고, 제조하면서 어떻게든 배터리 원가를 낮출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만 합니다.

실제로 현재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앞서 있는 주자들은, 일찍부터 배터리 내재화에 앞장서온 기업들입니다.

먼저 테슬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죠. 많은 사람들이 테슬라가 배터리 데이를 기점으로 배터리 내재화를 시도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배터리 ‘셀’에 한정된 이야기일 뿐입니다. 아시다시피 배터리는 셀을 모아서 모듈을 구성하고, 다시 모듈을 모아서 팩을 구성하는데요. 테슬라는 2000년대 중반, 테슬라 모터스라는 기업이 설립되던 시점부터 배터리 ‘모듈’과 ‘팩’에 대해 자체적인 개발을 진행해왔습니다. 또한 지금은 보편화된 배터리 셀 제조사와 완성차 업체 간의 배터리 합작 생산도 테슬라와 파나소닉이 일찍이 2016년부터 먼저 시작했던 방식입니다.
다음으로, 테슬라와 시장 선두를 다투는 BYD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전기차 업체로 알려져 있지만, BYD는 사실 1990년대 배터리 제조 업체로 시작해 전기차로 사업을 확장한 사례입니다. 자사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는 셀부터 팩까지 모두 자체 개발과 생산을 진행하고 있고, 나아가 이를 타 전기차 제조사에 판매까지 하고 있죠.
이렇게 일찍부터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해온 테슬라와 BYD는 전기차 시장에서 흑자를 내고 있는 몇 안되는 기업들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BYD는 최근 ‘이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저렴하다(電比油低)’는 슬로건을 내걸고, 1,500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의 제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부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터리 자체의 혁신이 없었더라면, 이런 일이 과연 가능했을까요?

배터리 내재화는 왜 필요한가?

그렇다면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를 내재화할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이점이 있는지, 2가지 정도 이야기해보려고 하는데요.

첫째로, 배터리 제조사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설 수 있습니다.

배터리 내재화는 단순히 배터리를 직접 만들어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재화를 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설비를 구축하고 소재를 구매해 제조 라인을 가동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완성차 업체는 각 설비별 작동 구조는 어떠하며, 소재 단가는 어떻고, 주요 공급사는 어디인지, 제조 시 어떠한 품질 이슈가 있는지까지 빠삭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배터리를 만들어보지 않는다면 결코 알 수 없는, 배터리 제조사와 동등한 수준의 이해를 갖출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협상 테이블에서 최소 동등한 위치에서 배터리 제조사와 협상에 임할 수 있게 되겠죠. 배터리 제조사들의 단가 인상 요구가 과연 적절한 것인지, SCM을 효율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업체는 어디인지, 비효율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해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을테니까요. 단순히 배터리를 사다 쓰기만 하는 업체와는 달리,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는 당연히 더 좋은 품질의 배터리를 더 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음을 뜻할 것이고요.

둘째로, 완성차 업체가 직접 배터리를 개발할 때 누릴 수 있는 분명한 시너지가 존재합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배터리는 셀 – 모듈 – 팩으로 구성됩니다. 셀 용량 증대가 한계에 다다르자, CATL과 같은 배터리 업체들은 모듈을 생략하고 셀을 모아 팩을 만드는 셀 투 팩 (Cell To Pack) 기술을 선보이기 시작했는데요. BYD와 테슬라 같은 완성차 업체들은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셀을 모아 곧바로 자동차 바디에 넣는 셀 투 바디 (Cell To Body) 기술을 선보이고, 가장 먼저 상용화에 성공합니다.

셀을 자동차 하부 구조에 바로 투입하는 테슬라의 Structural Pack 기술 (사진 출처: 테슬라)

그렇다면 CATL이나 LG에너지솔루션 같은 배터리 업체들은 왜 셀 투 바디 기술은 내놓지 못한 걸까요? 상상력이 부족한 것일까요? 기술력이 부족한 것일까요?

애초에 셀 투 바디는 배터리 제조사 혼자서는 연구개발이 불가능한 완성차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배터리 셀을 곧바로 자동차 바디에 넣기 위해서는, 이에 적합하게 자동차 바디의 구조, 강성 등 설계를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새로 구성해야 하고, 다시 이러한 설계에 적합한 배터리를 개발해야 합니다.
바꿔 말하면, 셀 투 바디는 배터리 제조사가 감히 터치할 수 없는 자동차 설계의 영역이라는 겁니다. 또 이를 위해서는 자동차 엔지니어와 배터리 엔지니어 간의 매우 밀접한 소통과 협력이 필요할 것이고요. 때문에 이는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배터리 제조사일지라도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습니다.

내재화, 왜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할까?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통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내재화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반대로 테슬라와 BYD 같은 전기차 전문 업체들은 더욱 더 자체 생산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고요.

이런 온도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이들 업체들의 태생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통 완성차 업체들은 아직까지 내연기관차 회사입니다. 이들에게 전기차 사업 비중은 미미할 뿐이고, 내연기관차를 팔아서 올린 수익으로 전기차에서 발생한 적자를 메우고 있는 실정이죠. 때문에 전기차 사업이 조금 비틀거린다 할지라도 당장 큰 타격은 없습니다. 또 안 그래도 돈 먹는 하마인 전기차 사업을 위해 추가로 배터리 내재화까지 진행하면서 적자 출혈을 키우는 선택을 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차라리 배터리 제조사를 열심히 쪼아서 원가를 낮추도록 유도하는 게 합리적인 옵션일 수 있죠.
반면 전기차 전문 업체들은 전기차에서 발생한 수익에만 의존합니다. 전기차를 더 많이 팔고 더 많은 이익을 내지 못한다면, 생존 자체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이를 위해 기꺼이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배터리 내재화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자동차 회사가 갑자기 내재화에 나선다고 배터리 잘 만들 수 있겠냐?”라고 누군가 반문할지라도, 당장 생존을 위해서는 고민 없이 무조건 가야 하는 길인 겁니다.

캐즘을 넘어서면, 내재화가 승패를 가른다

배터리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전기차 업체들에게는 더 많은 과제가 산재해 있습니다. 더 많은 대중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충전 인프라도 확충해야 하고, 완전 자율주행 기술 개발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요소들 역시 전기차의 상품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기에, 결코 외부에만 맡겨 놓고 기다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업계는 이러한 제약 요인을 직접 관리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으로 분명히 나뉘고 있는데요. 지금의 전기차 시장 둔화기가 지나간 이후에는, 제약 요인들을 넘어서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갈릴지도 모르겠습니다.

References
– 표지 사진 출처: Tesla Battery Day Presentation

 

 

 

일렉트릭 쇼크
찌릿찌릿하게 읽는 테슬라와 전기차 시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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