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목적기반 모빌리티(PBV)를 통해 제시한 미래 자동차의 한 모습. 기아 제공

전기차에 대한 고객 경험을
바꿔놓겠다는 IONIQ 5

오늘은 전기차 시대를 맞이해 달라지는 차 디자인을 살펴보겠습니다. 최근 공개된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5’는 전기차에 대한 고객 경험을 완전히 바꿔놓겠다는 점을 가장 중요한 홍보 포인트로 앞세웠습니다. 그 배경에는 엔진이 없어도 되는 전기차의 장점을 살린 새로운 공간 설계가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오닉5에서도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자동차 겉모습의 기본 틀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요. 전기차 시대의 차량 디자인은 어떤 점들이 달라지고 있고 또 어떤 점들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지 찬찬히 뜯어보겠습니다.

 

현대차의 컨셉트 카 ‘45’. 현대차 제공 과거 포니의 실루엣이 연상되도록 디자인했다는 아이오닉5는 직선을 강조한 겉모습이 특징입니다.

 

마침내 공개된 아이오닉5
컨셉트카 디자인 그대로 활용

지난 23일 현대차의 ‘아이오닉5’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한 첫 모델. 전기차 시대를 본격 공략하는 현대차그룹의 야심작으로도 큰 관심을 모은 차량입니다.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 현대차 제공

 

공개 행사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아직 실물이 전면 공개 되진 않은 상황인데요. 현대차의 서울 양재동 본사 사옥에 2대가 전시 돼 있는데 직원들 사이에서도 관심이 매우 크다고 합니다. 양재동 사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외부인 출입이 금지돼 있어서 아직 실물을 직접 보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차량에서는 우선 겉모습이 가장 눈길을 끌기 마련입니다. 아이오닉5에 컬럼식 변속레버와 디지털 사이드 미러, 랙 마운트 방식 조향 시스템이 적용된다는 소식을 한발 앞서 전해 드리면서 겉모습을 함께 알아보면 늘 “컨셉트 카와 거의 똑같다”는 답이 돌아왔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오닉5는 컨셉트카 ‘45’와 거의 비슷한 외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의 내부. 현대차 제공

 

엔진 사라지면서 넓어지는
전기차의 실내 공간

이런 아이오닉5가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로서 달라진 점은 어떤 것들일까요. 온라인 공개 행사와 사진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아이오닉5는 실내 공간 혁신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전기차에는 엔진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내연기관차에서 차량 전면부에 놓이던(아주 일부는 후면부에 배치) 엔진은 부피가 큽니다. 이런 엔진이 없는 전기차는 전면부 부피를 확 줄일 수 있습니다. 아이오닉5는 차량 전체 길이(전장)가 4.635m입니다. 그리고 앞바퀴 축과 뒷바퀴 축 사이의 거리를 말하는 축거(휠베이스)는 3.0m입니다.

 

 

자동차에서는 이 축거를 실내 공간의 크기를 가늠하는 대표 지표로 보는데요. 전장이 4.63m로 아이오닉5와 거의 동일한 현대차의 SUV 투싼은 축거가 2.755m에 그칩니다. 아이오닉의 축거가 거의 30cm 더 긴 셈입니다. 투싼보다 한 체급 높은 SUV의 싼타페의 축거는 2.765m(전장은 4.785m 혹은 4.8m)이고 대형 SUV인 팰리세이드의 축거도 2.9m에 그칩니다. 결국 아이오닉5는 전장은 투싼급인데 축거는 팰리세이드보다 더 긴 차량이 됐습니다. 엔진이 사라진 차량의 전면부를 압축해 앞바퀴를 앞으로 밀어서 전면 오버행을 짧게 줄이고 실내 공간을 키운 셈입니다. 계산해보니 전장 대비 축거의 비율이 이들 내연기관 SUV에서는 57~59%대에 그치는 반면에 아이오닉5는 65%에 육박합니다.

 

아이오닉5의 전면부

 

전기차에서 역할 달라지는
라디에이터 그릴

엔진이 사라지면서 바뀌는 것은 또 있습니다. 말 그대로 실린더 내부에서의 연소(폭발)를 통해 동력을 생성하는 것이 내연기관입니다. 엔진 내부에서 폭발하는 휘발유나 경유는 필연적으로 고열을 발생시킵니다. 이 엔진의 열을 식히는 냉각계통 역시 차량 전면부에서 필수적이었습니다. 냉각수를 식히기 위해 라디에이터를 설치하면서 그 앞에 배치하는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은 다양한 브랜드에서 차량 디자인의 핵심 요소로 활용돼 왔는데요.

전기차에서도 여전히 냉각은 필요하고 차량 전반의 열 관리는 오히려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차량 내부로 유입시켜야 하는 공기의 양은 달라지기 때문에 아이오닉5의 경우 전면 범퍼 하단에 ‘지능형 공기유동 제어기’를 활용하는 방식이 됐습니다. 자동차의 전면 디자인은 흡사 사람의 얼굴과 같은 형상을 보여줍니다. 헤드라이트가 두 눈이라면 라디에이터 그릴은 코 혹은 입과 같은 모습으로 전면 디자인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기능해 왔습니다. 이 요소에 어떤 변화를 줄지도 각 브랜드의 선택이 되고 있습니다.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이 사라진 전면 디자인을 채택한 테슬라가 있는 반면에 오히려 키드니 그릴의 크기를 키우는 BMW도 있습니다.

 

테슬라의 ‘모델3’. 테슬라코리아 제공

 

또 메르세데스벤츠에서는 전기차에서 발광다이오드(LED)를 이용한 전면 디자인 컨셉트를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라디에이터 그릴이 차량 디자인에서 워낙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왔고 여전히 차의 인상을 좌우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앞으로의 전기차가 어떤 방식을 채택할지도 궁금한 대목입니다.

 

 

전기차 내부는 평평한 바닥으로
자유롭게 공간 구성

전기차의 실내 공간은 넓어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차량 밑에 깔린 배터리 위에서 완전히 평평한 실내 공간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내연기관은 폭발로 다량의 배기가스를 만들어 냅니다. 기존의 내연기관차에서는 이 배기가스를 뒤로 배출하는 배기관 등이 차량 하부에 배치돼 있었습니다. 4륜 구동차라면 구동력을 전달하는 축도 앞·뒤로 연결돼 있어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내연기관차 실내 공간에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일종의 언덕(센터 터널)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이제 이런 요소들을 없앨 수 있게 되면서 전기차의 실내 공간은 평평하게 설계될 수 있습니다. 아이오닉5의 경우 ‘플랫 플로어’에 ‘유니버셜 아일랜드’라고 이름 붙인 콘솔을 설치했다고 홍보하고 있는데요. 이 ‘유니버셜 아일랜드’는 2열 좌석 바로 앞까지도 이동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사실 저런 장치를 아예 없애버리고 회전식 좌석 등을 설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 현대차 제공

 

전기차에서도 기존 자동차
디자인의 기본 틀은 유지

살펴본 것처럼 아이오닉5는 상당한 변화를 보여주는 전기차입니다. 그렇지만, 아이오닉5를 자동차 좋아하는 5살 남자 아이의 눈으로 쳐다보면 어떨까요? 제가 보기엔 한 눈에 “자동차다”라고 할 것 같습니다. 기존의 자동차, 특히 일반적인 승용차 혹은 SUV가 가진 기본적인 디자인 문법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인데요. 헤드라이트를 앞세우고 그 뒤에 높이가 낮은 엔진룸, 그 뒤에 비스듬하게 경사진 전면 유리, 뒤쪽으로 승객 공간(캐빈 룸)이 자리 잡는 그런 방식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이 승객 공간에는 앞 열에 2개, 뒷 열에 2~3개의 좌석이 배치되고 그 뒤쪽으로는 짐칸이 놓인다는 것 역시 동일합니다. 아이오닉5와 같은 전기차 역시 내연기관차와 동일한 바탕 위에서 어느 정도의 조정이 이루어진 정도 아니냐는 것입니다.

 

볼보 XC40의 스몰오버랩 테스트 모습. 볼보자동차코리아 제공

 

자동차 디자인의 뿌리에는
여전히 ‘안전’

이런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겠습니다. 전기차가 주는 자유로움을 이용해 혁신만을 앞세운 디자인을 적용했을 때는 고객들이 너무 생소해 할 수 있겠습니다. 도로나 주차 공간의 규격을 감안했을 때 승용차나 SUV의 기본적인 규격이 크게 변화하기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이라는 문제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대형 버스, 트럭 등이 함께 달리는 고속도로를 생각해보면 승용차와 SUV는 사실 작고 약한 존재입니다. 이런 승용차가 다양한 형태의 사고에서 승객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차량 전면부 그리고 후면부의 공간입니다. ‘엔진룸’이라고 부르는 공간이, 사고·충돌 상황에서는 ‘충돌존(Crumple Zone)’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차량 전방의 엔진룸과 후방의 트렁크 룸 등을 충돌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잘 찌그러지는 공간으로 설계하는 것입니다.

 

미국 연방 교통 안전 위원회(NTSB)

 

테슬라의 차량이 그런 것처럼, 아이오닉5에도 전면 짐칸이 있습니다. 더 줄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줄이지 않았다는 뜻이겠습니다. 사고가 났을 때 운전자와 승객이 입는 신체적 피해를 없애거나 줄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정한 공간. 이런 공간을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지는 않는 높이로 차량 앞·뒤에 배치하고 그 사이에 운전석을 포함한 승객 공간을 배치하는 것이 오랫동안 유지돼 온 승용차·SUV 디자인인 셈입니다. 실내 공간은 승용차와 SUV의 경우 일반적인 공간 수요를 반영해서(기본적으로 5인 안팎이 탈 수 있는 공간) 마련한다는 것 역시 대부분의 차량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사고 위험 없는 자율주행차 시대에는
완전히 달라질 수도

승용차·SUV의 이런 디자인 문법은 영영 바꿀 수 없는 것일까요? 어느 시점에서건 전혀 새로운 방식의 자동차 디자인이 등장할 가능성은 배제하기가 힘든데요. 최근에 제시된 개념으로는 기아의 PBV(Purpose Built Vehicle, 목적 기반 모빌리티)와 도요타의 ‘e-팔렛트(e-Palette)’가 눈에 띕니다. 두 ‘탈 것’ 모두 곡선을 활용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박스와 같은 차량들입니다. 엔진룸이나 트렁크 룸 같은 앞·뒤 공간이 없습니다.

 

 

이 차량들은 모두 ‘운전자와 승객’이라는 개념보다는 ‘다양한 목적에 이용되는 탈 것’이라는 개념이 강조되고 있는데요. 바퀴로 이동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위의 공간이 식당, 영화관, 병원은 물론 숙박공간도 될 수 있는 그런 개념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아직 현실화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들이 지금의 자동차와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자율주행 기술을 활용한 탈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이런 차들은 결국 사고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하는 자율주행차를 기반으로 디자인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아는 PBV를 도심항공 모빌리티(UAM)가 실현될 때 도시 내에서의 이동 수단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또 도요타가 2018년 공개한 e-팔렛트는 지난해 CES에서 공개된 도요타의 새로운 주거 공간 설계인 ‘우븐 시티’ 내부에 적용됐는데요.

물론 다른 곳에도 적용될 수 있겠습니다만, 고속 주행과 충격이 큰 사고 가능성은 배제한 차량들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앞으로의 전기차, 그리고 자율주행을 비롯한 신기술은 얼마나 더 새로운 모습의 차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독자 여러분들은 어떠한 방식의 변화가 필요 혹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미래차가 바꾸는 디자인의 세계는
다음 기회에도 계속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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